목회방

16, 아주상가 시대의 목회(참빛교회 목회 단상)

예그리나 1 380

16, 아주 상가 시대의 목회(참빛교회 목회 단상)

 

아주상가에서의 나의 목회는 개척교회를 제대로 하겠다는 결심의 실행으로 준비 과정을 다시 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나갔습니다.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에 계속 더 집중했습니다. 문화의 불모지 같은 부천시에 기독교 문화라는 부분을 가지고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최고의 연주자들을 불러서 공연을 하다 보니 언제나 공연장은 가득 찼습니다. 명품 교회를 만들겠다는 선언 속에는 교회다운 교회를 지향하는 여러 가지 목회 계획이 전달되면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라는 이미지가 최고를 지향하는 것에 사람들의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감사는 향기 되어 축복은 이슬처럼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되어진 특별 새벽기도회는 본교회가 먼 거리에 있는 다른 교회 분들이 참여하면서 은혜를 받고 마지막 송구영신예배와 함께 교회에 등록하는 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의 목회 축복기도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감동을 끼치면서 교회에 등록했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소유 목회를 선언하면서 교회 재정에 대한 목사의 무간섭과 언제든지 내 통장을 공개할 수 있다는 선언이 성도들에게 큰 도전으로 전해진 것 같습니다.

 

아주 상가에 있었던 기간은 참빛교회 목회 기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기간이었지만 그 만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먼저는 설교의 부담이었는데 거의 몇 년 동안은 저 혼자 거의 모든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물론 전도사님이 계셔서 가끔은 수요예배나 새벽 기도회를 맡기도 했지만 제 설교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 그 시간대에 오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제가 강단을 지켰습니다. 설교를 해도 전력을 다해서 준비하고 강단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시간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가끔은 부산에서 했던 설교를 저녁 시간이나 수요시간에 다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낮 예배 설교는 언제나 새롭게 준비하여 강단에 섰습니다. 낮 예배 저녁 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목요 구역 권찰회, 성경 공부등 일 주일 동안 하루도 틈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도 나가는 일이 없었고 교회 사역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회가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안식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는 참빛교회가 전부였고 선배 목사님들이 당부하던 순교적인 목회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지금 와서 그때의 목회 사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부끄러움 없는 당당함으로 남습니다.

 

나아가서 그 때에는 대 심방 이라는 것이 일 년에 한번 있었는데 대략 3월에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정마다 다 방문하는 심방으로 3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당시에 장년 교인이 5백이 넘을 때였기에 개인 가정마다 심방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지만 아주 상가에 있을 때에는 힘들어도 다 해냈습니다. 그리고 새 가족 심방이나 병자나 특별 심방들도 감당하는 것이 주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사는 야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심방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영성이라고 주장하는 자입니다. 심방을 해야 목사가 영적으로 살아 있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는 성도들을 친히 만나야 기도도 몸에 와 닿는 것이 되고 실제적인 목회의 내용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점심은 항상 집에서 대접했는데 그 당시 성도님들의 음식 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 있습니다. 그 때에는 가정의 사정을 다 알았고 자녀들의 이름도 다 외워서 만나면 꼭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그렇게 저와의 영적인 관계가 이루어졌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직도 힘들었던 그때가 생각이 나고 이번 연말 목회를 맡으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받아 드렸습니다. 참빛교회가 오늘이 있기 까지는 이런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Comments

키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