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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브라함의 믿음 3 /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예그리나 1 325

13, 아브라함의 믿음 3 /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성경에는 많은 신학적인 용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을 설명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으로 우리에게 그 단어들을 설명하는 방법보다는 실제 생활로서 설명해 주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가페라는 사랑을 설명하는데 세상의 많은 사랑에 대한 용어들을 비교해 가면서 이해시키려고 하시지 않으시고 내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가페의 사랑이다.” 라고 설명하십니다. 참 알아듣기가 쉽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충성이라는 단어가 매우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선생님이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다.“ 라고 말해 주니까 참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모델로 삼으셔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아브라함을 보아라.“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 하면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 믿음의 본보기가 아브라함이라고 말하면 오해를 합니다.

 

애시 당초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별종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나 종자부터가 틀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따라 갈수 없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해서 우리의 믿음의 본보기로 삼으실 때 가장 보편적인 사람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형편없는 환경과 상황 속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세상에 누구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본보기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에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폴 투르니에] 라는 심리학자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장벽은 가면같이 그 사람에게 붙여진 언어.” 라고 지적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고 의미가 붙여질 때 그의 참 모습을 보기가 어렵게 됩니다. ” 저 사람 성자야, 저 사람은 영웅이야...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실한 인간성은 감추어지고 그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 갖다 놓고야 맙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도 하고 영웅으로 추대하기도 합니다.

 

이런 가치관에 대해 비난하는 글들 중에 성자는 성스럽게 자기기만을 하는 자.” 영웅은 영락없이 웅덩이에 빠진 자.” 천재는 천하에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이해할 때 완전한 사람으로 이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아브라함은 완벽한 사람이라든지 본래부터 믿음의 영웅이 아닙니다. 지극히 보통 사람이기에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실수도 많았고 연약해서 범죄 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으로 우리에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까? 본래 아브라함은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였으며 우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우상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부르셨습니다. 처음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 번 아브라함을 설득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간섭하시고 역사하셨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아브라함이 설득 당하고 순종한 것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한 번 계획하신 일을 포기하시거나 중도에 변경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없이 우리가 설득당하고 순종할 때는 마치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했다고 칭찬하시면서 부추겨 주십니다. 오늘 내가 가진 믿음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언제나 겸손하게 무릎 꿇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내게 있었기에 믿게 되었고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Comments

키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