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방

16, 아브라함의 믿음 6 / 믿음의 새 그릇

예그리나 1 528

16, 아브라함의 믿음 6 / 믿음의 새 그릇

 

창세기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그릇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자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질그릇 등 수 많은 그릇 중에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깨끗함은 거룩함과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해도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기는 양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먼저 거룩함으로 새롭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합니다. 그릇의 크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의 용량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거룩하게 하시고 믿음의 용량을 더 키워 가십니다.

 

첫째는 순례자의 의식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125절에 보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침내는 힘든 여정을 겪고 오늘에 이른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 까지 오는 데는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도착했는데 6절에 보면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미 거주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왔으면 기름진 목초지와 흐르는 시내가 펼쳐지면서 정착할 여건을 주셔야 하는데 전혀 예상과는 달리 그곳은 남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또 순례자처럼 이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그의 믿음을 온전케 만들면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보다 먼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성공자로 키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영적인 측면에서 성공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순례자 정신이 우선입니다.

 

둘째는 정복자로 만드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보다 더 큰 세상을 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애굽 땅 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작은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보다 더 큰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보고 있는 가나안 땅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남방으로 계속 옮겨 가면서 더 큰 세상을 가슴에 품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조카 롯과 헤어진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정복해야 할 정복자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땅 끝까지 내 중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 교회주의에 빠지지 말고 세상을 가슴에 품고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시시하게 움츠리지 말고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크기를 볼 수 있는 잣대입니다.

 

셋째는 예배자로 만드십니다. 본문에는 두 번이나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이방인들이 우글거리고 우상의 제단이 서는 곳에서 그들과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풍습으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마치 이방인들에게 경고하는 듯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자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참된 증거입니다. 바로 위기 속에서도 역경 속에서도 예배자로 사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Comments

키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