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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보 사설 - 소속감과 이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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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과 이질감  - 2018 년 6월 3일자 기독교보 김윤하 담임목사 사설

    

 

예일대학교 교수인 미라슬라브 볼프 교수는 모든 참된 삶, 진리의 삶에는 나그네의 고통이 필요하다. 소수의 집단이든 다수의 집단이든 상관이 없이 인간은 나그네의 아픔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볼프는 이러한 삶을 사는 인격을 우주적 인격이라고 말한다. 우주적 인격자는 나그네의 삶을 통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삶의 성장을 체험하는 자들이라 주장한다. 나그네는 항상 이질적인 집단속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삶을 영위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이러한 경험이 성장의 동력이 되고 변화의 힘이 된다.

 

어떤 국가나 공동체가 같은 성향을 가진 멤버로 고정되어 버리면, 그 공동체는 경직화되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세계 곳곳에 많은 종족들이 사라진 이유 중에 하나가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서 더 이상 발전이나 성장이 멈추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기들과 다른 이질적인 강한 민족들이 들어왔을 때 도무지 대처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망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많은 민족이나 종족들이 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본래 동떨어진 환경을 갖고 단일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만들어 내었다. 단일 민족이라는 소속감에 얽매여 이질감을 배척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원인을 제공하였고, 북한도 지나친 주체사상으로 세계와 단절하고 이질감을 배척함으로 오늘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초기에 파송되어 나가서 가장 힘든 부분이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어떻게 받아 드리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 이유는 한 번도 다문화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 편파적이고 노골적으로 억압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도 단일 민족의 소속감에 매여서 다름을 쉽게 받아 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속감과 이질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소속감은 언제나 다른 이질감을 필요로 하며, 이 이질감을 통하여 어떤 국가나 공동체가 성장하고 부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볼프는 이 이질감을 우주적인 격리라고 불렀다. 그는 부부 사이에도 부자와 부모 사이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목사와 교인 사이에도 정치적인 이념이 다른 정치인 사이에도 언제나 이 우주적 격리의 중요성을 받아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서 이질감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데도 이질감을 틀렸다고 정죄하고 배척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발전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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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상이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전쟁과 싸움이 그치지 않는가? 이질감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본위의 고정관념이라는 패러다임이 삶의 기준으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질감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도전을 주고 영향력을 주는지를 잃어버리고 무조건 적대시하고 정죄해 버리기 때문에 사회나 교회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이다. 특히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 소속감에 얽매여 있는 무리들이 터줏대감이 되어 기득권을 주장하거나 전통에 얽매여 있게 되면 더 이상 성장의 역사는 멈추어져 버릴 것이다.

    

물론 원칙적인 것은 보수하고 지켜나가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부분은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특별히 6월은 국가를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달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남북의 분단 이후에 너무나 이질적인 요소들이 팽배해졌다. 언어나 문화나 사상이나 삶의 방법까지도 다르다, 남한이라는 소속감, 북한이라는 소속감이 너무 강해서 서로의 이질감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통일이 핵심적인 목표라면 자신의 현재의 소속감에 매이지 말고 이질감을 수용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를 비판하기 이전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이럴 때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이질감의 빛이어야 한다. 둘을 하나로 묵을 수 있는 우주적인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 김윤하 목사  

 

2018 년 6월 3일자 기독교보 김윤하 담임목사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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